요리

디종 머스타드 샌드위치 레시피

matchball 2020. 5. 3. 01:40

얼마 전 S 형 그리고 I와 함께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며 음식 취향에 대한 얘기가 나오다 집밥에 대해 정의하게 되었는데 S형과 내가 동시에 외쳤다.
올리브 오일에 마늘을 볶을 때 나는 냄새.
둘 다 유학은커녕 교환학생도 가본 적 없이 한국에서만 내내 있었을 뿐인데, (다만, 둘 다 유럽여행을 가본 적이 있고, 신기하게도 S 형은 이탈리아만 2,3주 정도 머물렀었고, 나도 이탈리아에서 2주 머물고 러시아로 간 적이 있다.) 올리브 오일에 마늘을 볶는 순간 나는 냄새로 집밥을 정의했다는 게 웃겼다.

집에서 먹는 밥이라면 사실 밥솥에서 쌀밥이 지어질때 나는 냄새나 찌개류 혹은 멸치 육수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건 엄마가 해주는 밥이고, 내가 내 집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면, 그 시작이 올리브 오일에 마늘을 볶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S형과 내가 똑같이 생각하는 건 내가 자취와 요리를 S형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회학도 많이 배웠네.

S형은 새내기 때부터 자취를 했었고, 내가 S형을 알게 된 것은 그가 전역을 하고 난 이후로 적어도 자취 4년차 정도 되었을 때이며, 내가 학부 2학년 때이다. 보통 남자 선배 동기 후배들의 자취'방'에 가면 대충 너저분했고 대충 앉고 마실만했다. S형은 자신의 자취방을 항상 '집'이라 표현했다. S형 '집' 은 항상 정돈되어 있었고, 언제든 무언가 요리를 해서 내주었다.  그리고 그 요리들은 대부분 올리브 오일에 마늘을 넣으면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수차례 술자리를 가졌을 때 나도 언젠가 자취를 하면 깔끔하게 살고 요리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쉽게도 S형처럼 깔끔하게 살지는 못했다.

그리고 꽤 시간이 오래 흘러서 나도 자취를 하게 되었다. 자취를 하기전에도 요리를 몇 번 했었다. 부모님이 집을 비우셨을 때, 친구들 혹은 애인과 여행을 갔을 때 종종 요리를 했다. 이럴 때 요리를 하면 내가 치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주방에 온갖 것들을 펼쳐 놓으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든 말든 이것저것 하게 됐다. 그런데 자취를 하면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설거지도 내가 해야 한다.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 시간이 결코 적지 않기 때문에 요리는 간단해져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내 집밥에서 한식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수십 차례 S형 집에서 술을 마시고 만들어준 요리를 먹으면서 내가 자취를 하며 할 수 있는 음식의 시작도 올리브 오일에 마늘이 되었다.

치아바타에 올리브오일에 볶은 마늘과 파채, 선드라이 토마토 그리고 디종머스타드를 조합한 샌드위치. 오늘의 샌드위치의 레시피는 S형이 알려준 레시피이다. 어느 날 치킨을 먹게 되었는데, 치킨이 별로라, 그리고 하필 그날은 S형 집에 치아바타가 있었으며, 마늘과 파, 선드라이 토마토는 늘 있었기 때문에, 이 샌드위치를 해주었다. 그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디종 머스타드를 먹었다. S 형이 많은 요리를 해주었지만, 대부분 술안주였던 탓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거나, 아니면 레시피가 너무 생소하거나 복잡해서, 형이 해준 요리 중에서 아직도 내가 따라 할 수 있는 요리는 이 샌드위치뿐이다.

 

재료

 

오늘도 시작이 길었다. 
재료 : 치아바타, 마늘, 파, 디종머스타드, 베이컨(혹은 치킨이나 스테이크도 많이 넣었다. 치킨은 살 발라서, 스테이크는 한입거리로 썰어서), 선드라이 토마토(있으면 훨씬 좋다.), 갖은 양념(소금 후추 페퍼론치노 파슬리 파마산 등등), 할라피뇨와 올리브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빵을 굽는다

 

1. 치아바타를 반으로 썰어준다. 다만 완전히 썰어서 분리시키진 않는다. 빵을 벌린채로 기름은 두르지 않고 중불에서, 타지 않되, 따뜻하게 될 정도로 빵을 구워준다. 이건 따뜻한 샌드위치다. 사실 식빵이었으면, 겉 표면을 바삭하게 하기 위해서 갈색이 될 때까지 구우면 좋겠지만, 이건 안쪽을 굽는 거고, 안쪽이 바삭해진다 해도, 샌드위치 먹을 때 그 식감이 느껴질 정도로 내가 예민하진 않아서 그냥 빵을 데우고 빵에 있을 버터의 풍미를 다시 살린다는 느낌으로 데워준다.

 

가스레인지 왜이리 더럽냐...

 

2.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그 위에 베이컨을 굽는다. 저번에 말했다시피 냉동한 베이컨을 바로 넣으면 기름이 튈 수 있으니, 전자레인지로 살짝 해동하면 편하다. 베이컨을 먼저 굽는건 이후에 넣을 재료에 베이컨 기름의 맛을 덧입히기 위함이다. 베이컨이 아니라 치킨이나 스테이크를 사용할 경우에, 치킨은 이미 충분히 익은 먹다 남은 치킨이기에 파를 볶은 이후에 넣고, 스테이크는 미리 만들어서 레스팅 해놓고 마지막에 빵 사이에 넣어주면 된다. 베이컨이 좀 더 쉽게구해지긴 하지만 베이컨보단 치킨이, 치킨보단 스테이크가 맛있다. 

 

 

3. 베이컨이 어느정도 익었을 때 마늘을 넣는다. 요리 레시피를 보다 보면 제일 짜증 나는 게 어느 정도, 적당하게라는 단어인데, 불의 세기, 후라이팬의 열전도 같은 게 제각각이라 몇 분이라고 말하진 못한다. 다만, 나처럼 냉동 베이컨을 쓴다면, 베이컨이 다 풀렸을 때 마늘 넣으면 된다.

 

첫번째 포인트 파채

 

4. 마늘이 저 정도 갈색빛을 띄면 파와 페퍼론치노를 넣는다. 저때 먹고 보니 파채가 좀 부족했다. 파채 많으면 충분히 넣어도 된다. 그리고 꼭 파채로 살 필요 없다. 나도 있는 대파 대충 썰어서 넣었다. 그리고 소금 후추도 뿌린다. 
보통 샌드위치는 로메인, 양파, 양상추 이런 재료들 넣는데, 이 샌드위치는 프레쉬한 샌드위치가 아니다. 술자리의 시작 혹은 든든한 한 끼 정도 되는 샌드위치고, 그러다 보니 느끼해질 수 있는데 그걸 잡아주는 것들 중 하나가 파채이다. 파가 씹힐 때 향도 좋지만, 유일하게 아삭한 식감이며, 파 기름이 다른 재료에 배어서 좋은 향을 낸다.

 

이 레시피의 두번째 포인트 선드라이 토마토

 

5. 선드라이 토마토. 생소한 재료다. S형이 냉장고에서 이걸 꺼낼때 아니 무슨 자취하는 사람이 이런 걸 갖고 있어 싶었는데, 나도 자취하면서 꾸준히 구비했었다. 쿠팡 등 인터넷에서 많이 팔고, 한번 사면 오래간다. 선드라이 토마토가 그냥 토마토보다 좋은 점은, 그 이름처럼 말렸기 때문이다. 토마토를 샌드위치에 넣으면 식감도 좋고, 신선한 맛도 주는데, 토마토는 수분이 굉장히 많아서 채즙이 줄줄 흐른다. 그거 때문에 다른 재료까지 수분이 너무 많아지기도 하고, 먹을 때 불편하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토마토가 있는 부분 하고 없는 부분 맛의 차이도 많이 달라지고, 그런데 선드라이 토마토를 재료랑 같이 볶으면 그 토마토 향이 재료 전반으로 퍼지고, 수분은 없어서 먹을 때도 보다 깔끔해진다. 집에서 안주 만들기 귀찮을 때, 선드라이 토마토에 올리브 치즈 정도만 먹어도 훌륭하다. 한번 사고 나면, 안 살 수 없어지는 재료.

 

마지막 포인트 디종 머스타드

 

6. 디종 머스타드를 꽤 넉넉하게 빵에 바른다. 디종 머스타드여야 한다. 홀그레인 머스타드는 디종 머스타드에 비해 산도가 적어서 느끼하고, 그 양키식 하인X 머스타드는 너무 묽고 쌈마이 맛이 난다. 적당히 크리미하면서도 산도가 있지만, 묽지 않고, 겨자의 톡 쏘는 맛이 충분히 느껴지는 디종 머스타드여야만 한다. 디종 머스타드 쿠팡에서 판다. 썬드라이 토마토랑 같이 지금 누르면 내일 아침에 집에 올 수 있는 세상이다. 
스테이크 소스로 홀그레인 머스타드도 많이 쓰는데, 디종 머스타드에 오렌지나 레몬즙 넣어서 소스로 찍어먹어도 괜찮다.

 

디종 머스타드를 치아바타에 바른 모습. 할라피뇨도 있으면 좋고.

 

7. '1'에서 구운 치아바타에 할라피뇨도 얹는다. 할라피뇨는 필수 재료 아니다. 있으면 좋지. 그래도 파채, 페퍼론치노, 디종 머스타드가 있어서 매운맛은 충분히 나긴 하는데, 냉장고에 있으니까 넣었다. 

 

 

8. '5.'에서 팬에 볶았던 재료들을 빵위에 얹는다. 파슬리나 파마산이 있다면 그 위에 뿌린다. 바질이나 르꼴라가 있다면 이때 넣어도 좋겠지, 로메인도 좋고. 이 날은 재료가 없었다.

 

썰고 먹는다.

 

9. 끝.
앞서 말했듯, 브런치로 먹는 샌드위치 아니다. 온전한 식사 대용 혹은, 술자리의 서막을 알리는 든든한 한 끼 식사다. 다시 말하자면, 올리브 오일, 마늘, 파채, 치아바타가 필수 재료이고 나머지는 그때그때 있는 것들을 사용하면 된다. 물론 샌드위치로 쓸만한 치아바타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다행히도 나는 맛있는 치아바타를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치아바타가 없으면 또띠아에 동일한 재료를 넣어도 맛있다.